선물, 그리고 예술이라는 틈
『선물』과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에서 19회 / 떠오른 생각 12회

우리가 예술에 의해 감동을 받을 때 우리는 예술가가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그가 자신의 선물/재능에 '봉사'하기 위해 수고한 데 감사한다. 예술가의 작품이 창작자에게 주어진 선물의 발산이고,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도 그것을 선물로 받아들인다면 예술작품 또한 선물인 걸까? 우리가 그 작품을 무엇으로 이해하느냐가 선물이냐 아니냐를 결정한다. 이렇게 말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어떤 물건을 대하는 방식에 따라 그 물건의 성격이 변할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여야겠다" "답례선물의 등가성은 주는 사람에 맡겨진다. 물물교환을 할때는 흥정을 한다. 그리고 누군가 약속한것을 이행하지 않으면 추궁한다. 하지만 선물은 선물이어야 한다. 이는 선물 상대에게 내 실체 중 일부를 주고, 그 다음에는 그가 나에게 그의 일부를 줄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는 것과 같다. 나 자신을 상대의 손에 맡기는것이다. 이런 규칙들로 인해 선물은 교환됨에도 불구하고 운동성을 보존한다. 거래는 존재하지만, 거래되는 물건을 상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독일 단어 'Gift' 가 독을 뜻한다."이는 모든 교환과 변화에는 양면이 있다는 뜻이다. 한편으로 인생에서 새로운 정거장에 다가가는 사람은 새로운 정체성을 나르는 선물을 투자받고, 다른 한편으로 몇몇 연장자는 옛 정체성을 회수해 이것을 젊은이에게 선물한다""일상성을 일상적이라고, 단순함을 단순하다고 무시할게 아니라, 그곳이야말로 각자에게 정당한 시작의 자리임을 밝힘으로써 우리는 작지만 결정적인 권한을 갖게 된다.""예술이론의 어려움은 그 자체로 비난을 사거나(이동진의 한줄평) 혹은 시스템의 조정을 일으키는 문제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개인들의 독서 상황만 놓고 볼 때, 예술이론에 대해 어렵다, 어렵다 말하는것은 그저 초심자의 참을성 없는 불평으로만 치부되곤 한다. 이론으로 가는 길은 당연히 어렵고 그러니 걸을 수 있는 자가 걸어갈 뿐 누구도 불평할 필요는 없다면서 말이다.""예술은 사적이다. 일본의 미학자 와타나베 마모루는 이를 두고 '작품의 개별적 존재성' 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작품은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작품이 작품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개성적, 특수적이라는 것이다.작품은 여기에서 비물적이고 게다가 개적인 존재인 것이다. 쉽게 말하면 예술이란 무엇이냐 하고 물으면 그 대답은 '사람 바이 사람', '작품 바이 작품' 이라는 것이다. 최종 심급에서의 합의불가능성. 예술의 '독특함'이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우리 사회에서 창조성과 같은 특성이 예술이라는 분야에 특정되는 경향이 있고 또다시 이 예술은 특정한 현실 제도나 대상에 특정되는 경향에서 비롯된다. 나는 각자가 어떻게 의미 생산의 경험을 할 수 있는지에 관심이 있다. 따라서 '그 좋은 걸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냐'는 일상의 소박한 질문을 방법적 지식을 요구하는 정당한 물음으로 존중하며 그 답을 찾아야 한다.""선물은 연결을 만든다. 프랑스인은 관습적으로 자신이 모르는 사람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작은 식당에서는 낯선 사람과 한 시간 남짓 가까운 관계가 된다. 레비스트로스는 말한다. 확실한 만큼 첨예한 갈등은 아니지만, 사생활의 규범과 공동체의 현실 사이에는 긴장 상태를 자아낼 정도의 갈등이 엄연히 존재한다. 찰나이긴 해도 껄끄러운 이 상황은 와인을 교환함으로써 해소된다. 그것은 상호간의 불확실성을 없애주는 선의의 의식이다. 공간적 근접성은 선물의 교환을 통해 사회적 삶이 된다. 나아가 와인을 따름으로써 또 다른 교환인 대화가 승인되고, 또 다른 사소한 사회적 유대가 연쇄적으로 펼쳐진다."" 그와 같은 단순한 사례는 많다. 비행기에서 나란히 앉게 된 낯선 이에게 사탕이나 담배를 건네는 일, 심야버스 승객들 간에 오가는 선의의 몇 마디 말이 다 그런 사례이다. ""상품은 값어치 value가 있고 선물은 그렇지 않다는 말로 분석을 시작해보자. 선물은 가치 worth가 있다. 선물이 경계선을 넘어가면 선물이기를 멈추거나 경계선이 사라진다. 반면 상품은 본성에 어떤 변화도 없이 경계선을 넘어갈 수 있다. 나아가 상품의 교환은 그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경계선을 확립할 때, (가령 친구에게 필수품을 판매할 때)가 많다.""상품이 주는 흥분은 가능성의 흥분이자, 특정한 삶에서 멀리 벗어나 가능한 모든 범위의 삶을 맛보려는 데에서 오는 흥분이다. 우리는 이방인, 낯선 사람이 되고 싶을 때가 있다. 또 지금 우리의 삶의 형태가 유일한 것이 아니라고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또 다른 삶의 가능성에 마음이 들뜬다.모든 젊은이는 한번쯤 자신을 길러주는 유대 관계에서 떨어져 나와 탕아가 되기를 바란다. 때로는 지금까지의 애착 관계와 소원해지는 것을 맛보고 다음 애착 대상은 무엇이 될지 공상에라도 잠겨보려고 시장으로 향한다.""관계를 거절할 때는 선물 교환 또한 거절해야만 한다.""예술에 어떤 실천적인 잠재력을 부여한다. 왜냐하면 예술이 개념이나 체계와 같은 유한성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는 무한성의 장소이기 때문이다.""그럼에도 그래서 그게 뭔데? 라고 물으면 마치 그런것을 처음 접한 듯한 기분이 든다. '와, 이건 정말 예술적이야!라고 말하지만 그게 무슨 뜻이냐고 되물으면 딱히 무어라 답하기 어렵다. 자기도 모르는 말을 함부로 하고 있다고 타박하지는 말자. 언어 사용의 지시적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관습적인 맥락이(그것도 몰라?) 그것을 정확히 정의하는것보다 더 강력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다.""뚜렷한 선의 부재는 여러 사물들이 콜라주 되어 모여 있는 구성에서는 하나의 사물이 다른 사물과 인접하게 배치되지만 윤곽선이 없어 그것들 전부가 하나의 전체로 이해되게끔 만든다. 개별 사물 하나하나의 의미보다 이것을 관찰하고 구성하는 특정 시점의 의미가 더 크게 전달되는 것이다. 윤곽선의 부재로 개별 사물의 내용에서 벗어나고, 다시금 색의 통일성으로 구성해 낸 전체의 감각은 법원이라는 압도적인 현실 공간의 논리를 벗어나게 해주지만, 다른 한편 그 색이 갖는 논리에 빠지는 것이기도 하다.""내게 필요한것은 '걸작'같은 게 아니라 자신의 기준을 가진 언어 X이며, 내가 의지했던 것은 이것에 묻고 답을 얻으려는 나 자신의 해석적 의지와 직관, 그리고 단순하기 그지없는 '왜냐하면'의 방법이었다.""어떤 것(또는 어떤 사람)이 '재산'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 '그안에' 그런 행동의 권리를 가지고 있을 때이다.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 없이는 재산도 없다. 그런 뜻에서 재산은 사물(또는 사람) 안에 들어 있는 인간의 의사 표현이다.""우리가 이런 선물 노동을 가치 있게 여긴다면 대우를 개선해줄 수는 없을까? 사회복지사에게 의사만큼의 대우를, 시인에게 은행원만큼의 대우를, 교향악단의 첼로 연주자에게 특별석의 광고회사 임원만큼의 대우를 해줄 수는 없을까? 물론 그럴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가치 있게 보는 선물 노동에 그만한 보상을 할 수 있으며, 응당 그래야 한다. 다만 여기서 내가 말하려는 바는, 그런 보상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그들이 받는 보수는 시장에서 돈이 벌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것이 아니라 집단에 의해 주어지는 선물임을 인정해야만 한다는것이다.""모든 행이 교차하는 곳에는 빛나는 점이 존재한다. (....) 이 확실성에는 그 점에 대한 나의 관계까지 들어 있었다. (....) 그 어떤 것도 내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며, 내가 앞으로 성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나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물로 주어질 것임을 아주 강하게 느꼈다. 모든 예술가들이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술가는 작품 활동 가운데 어떤 요소는 자신의 통제 밖에 있는 어떤 원천으로부터 온다는 느낌을 받는다.""시인이자 소설가 메이사튼은 혼자 산다는것에서 이렇게 쓴 바 있다. '단 하나의 진정한 박탈이 있다는 것이 오늘 아침 내린 결론이다. 그것은 자신의 선물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지 못하는 것이다. (...) 선물이 안으로만 돌 뿐 밖으로 주어지지 못하면 무거운 부담이 되고, 심지어 때로는 일종의 독이 된다. 마치 생명의 흐름이 역류하는 것과 같다.""현대 사회에서 자율성을 발휘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은 나날이 증가한다. 능력을 발휘하고 싶으면 일단 자격을 얻고, 또 무엇이 먼저 되라는 사회적 명령은 끊이지 않는다. 자율성은 그 이후에 소유하게 되는 일종의 자산이나 권위가 되었다."

우리가 예술 작품을 보고 감동할 때, 그것이 ‘선물’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창작자는 자신의 고유한 감각과 시간을 들여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 과정은 누군가에게 받은 재능을 발산하는 일이자, 동시에 타인에게 감정과 통찰을 건네는 일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누군가에게는 명확한 메시지보다 더 강력한 선물이 된다. 해석의 자유를 열어두고 감정을 나누는 그 순간, 예술은 누군가에게 어떤 말보다 깊은 위로로 다가온다.

하지만 선물은 주는 방식에 따라 쉽게 상품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포장지와 가격표가 붙는 순간, 선물의 본질은 흐려진다. 진짜 선물은 계산되지 않은 마음에서 출발한다. 나 자신을 상대의 손에 맡기는 태도, 되돌려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기는 마음. 그런 마음만이 ‘선물답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물질이 아니라 관계의 형식이고, 움직이는 감정의 언어다.

세대 간의 선물 교환도 흥미롭다. 어떤 이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고, 어떤 이는 그것을 물려주며 떠난다. 변화는 일방적이지 않다. 그렇게 선물은 순환한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분야에 국한된 창의성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직관을 따라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조형하는 것. 나는 이 자유로운 흐름 속에서 창작을 꿈꾼다. '걸작'이 아니라 '나만의 언어'를 만들기 위해.

그 과정에서 '잘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객관적 기준이 아닌, 자기만의 해석 틀을 갖는 것. 자기 감각을 존중하는 사람이 타인의 감각도 존중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예술을 제도 밖으로, 관습 밖으로 옮기고 싶다. 취향이 우연히 맞는 낯선 이와의 대화 속에도 예술은 존재한다고 믿는다. 향이 좋은 핸드크림을 나누며 잠깐의 유대를 느꼈던 비행기 속의 한 순간처럼 말이다.

무엇이든 너무 뾰족하게 경계를 긋기보다, 흐릿한 선들 사이에서 새로운 감각이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고 싶다. 예술은 언제나 ‘그게 뭔데?’라는 질문을 불러오지만, 바로 그 질문에서부터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 있는 해답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좇는 예술이고, 내가 주고 싶은 선물이다.